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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사회와 정치적 올바름

eomiso(Aesop) 2020. 10. 2. 17:22

 

남중, 남고를 나오고 한국 근현대사를 산업화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가족에서 자라난 내 주변에는 잠재적 인종차별주의자(Racist), 성차별주의자(Sexist)들이 생각보다 많다. 최근 이런 분들이 보는 유튜브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빨갱이, 좌파적사고 고리타분한 이상론이라고 일갈하는 주장들이 올라오고 있는 듯 해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보이는 글을 적어 봤다.

정치적 올바름은 떠오르는 현존하는 주요 소비 트렌드이다.

우선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경제를 다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하시니 이런 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먹고사니즘적 니즈에 있어 중요한 사안인지 살펴보자. 정치적 올바름은 이미 하나의 소비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실버산업에서 소비자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잘 못느끼실 수 있겠지만, 아이다스•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리테일러들은 이미 정치적 올바름이 자신들의 주요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알고 있다.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 기업들이 운영하는 트위터만 들어가 봐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

Don’t do it for once

한국 사회의 떠오르는 기대주 문화컨텐츠산업만 보더라도 한국사회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pop, K-drama를 소비하는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굉장히 중시한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BTS 가 UN에서 연설한 내용을 보면 대체적인 내용이 정치적 올바름과 맞다아 있다. 이들이 한국 문화에 각광하는 이유는 그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이런 아티스트들이 예술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팬들의 성향과 잘 맞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최근 George Floyed 관련 상황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트위터 상에서 일어났다.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봇들이 #WhiteLivesMatter 같은 말도 안되는 해시태그을 붙여가며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를 K-pop 팬들이 나서서 이들의 해시태그 운동을 저지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kpopstans#WhiteLivesMatter) 이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는 소비층을 상대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혐오의 메시지가 주요 메시지가 된다면? 이들이 한국에 대해 느끼는 매력은 굉장히 줄어들지 않을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느끼는 가장 큰 실망감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문화를 겪게 되었을 때 생긴다고 했다. 아이고 부장님… 살살 좀 하시지…

우리는 한국을 떠나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다.

문제가 되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 대다수의 특징이 외국에서 생활을 해본적이 별로 없고(생활이라고 했다, 단체 여행 말고), 외국인들과 교류한 경험이 잘 없다는 점인데 (우리 나라에서 소주 한 잔 하러 가듯 맥주집에서 술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그런 교류 말이다 비즈니스 출장 말고), 이분들은 눈 찢어진 아시아인으로서의 지위가 얼마나 차별과 혐오에 취약한지 모른다. 떵떵 거리는 그 목소리가 한국땅을 벗어나는 순간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모르는 이들이기에 연대를 통한 정치적 올바름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모른다. 물론 해외에서 아시아인들을 무시하는 이유 중에는들 바로 이런 연대 능력의 부족도 있다.

우리 자신도 언제든 주변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 나도 약자가 될 수 있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바로 정치적 올바름의 도덕적 논거의 시작점이다.

뭐 어렵게 얘기 했지만, 남들로부터 부당한 취급받기 싫으면 본인부터 남을 존중하라는 초등학교 도덕수업 내용은 이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정치적 올바름은 다원화 시대의 규약이다.

사회가 꽤 높은 정도의 다양성을 내포할 때, 정치적 올바름이 무너진 결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현재 George Floyed 시위 상황이다. 뭐 이것도 폭도가 문제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럴 땐 폭도들 잡아가둔다고 시위가 결코 줄지 않았던 우리 한국 현대사를 떠올려보자. 사실 한국은 그렇게 다양성에 기반한 사회가 아니다. 획일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겠으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언제나 중앙집중적이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이런 혼란이 있을일이 없다고 안심하고 있어도 될까?

문제는 한국 사회도 어느정도 선진 반열에 올라서면서 다양성의 정도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청소년, 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나오는 것 외에도 인구 감소의 시대에 해외로부터의 인구 유입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해외에서 섞여들어오는 사람들 중엔 흑인도 있을 것이고, 성소수자도 있을 것이며, 장애인, 그리고 빨갱이 도 필연적으로 섞여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다양화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고, 우리 문화는 이런 다양성을 마주해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고?

그렇다, 결론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은 좌파 우파로 양분할 사항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남이 뭘 좋아하든,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 내 소유권을 비롯한 천부적 권리에 침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상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람을 대하자는게 좌파적인 얘기인가? 이것도 분명히 자유주의적 사상에 기반하고 있는 주장인데?

끝으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의 기원 내지는 역사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사실 이 운동은 흑인을 깜둥이라 부르지 말고, 동성애자를 pervert라 부르지 말고, 여성을 계집이라 부르지 말자는 정도의 운동었다. “Correctness” 는 도덕적 올바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사람을 피부색, 성별, 경제적 사회적 계급에 기반해서 부르지 말고 그사람의 이름으로 “바르게” 부르자는 운동이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 이슈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이 교조화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인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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